젝 카트렐의 예수진리(제7과 은혜에 관한진리-(3))
2002-10-03
제7과 은혜에 관한진리-(3)



A.율법의 방법

구원의 방법으로서의 율법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것의 기본 규칙은 아주 단순하다. “계명을 지켜라, 그러면 형벌을 피하게 된다. 계명을 어겨라, 그러면 형벌을 받게 된다.” 계명이란 말은 법전이나 한 인간이 태어난 시대에 적용되는 명령을 말한다. 인간이 만일 그에게 적용되는 명령을 지키면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여 구원 받을 것이다. 만약 그가 명령을 어긴다면 그는 형벌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율법의 체제가 작용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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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율법 아래서 우리의 삶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만물의 자연적 상태이다. 모든 사람은, 독특한 법전(모세의 율법이나 신약성서의 계명 같은) 아래서는 물론 하나님과 관계하는 방법으로서 율법 아래서 태어난다. 모든 사람은 그에게 적용되는 계명들을 지키든지, 어기든지 해야만 한다.



이제, 율법아래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론 적으로 가능하다. 기본 법칙은 다음과 같다. “계명을 지키라. 그러면 형벌을 피하게 된다.” 그러므로 율법아래서는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야만 한다. 완전한 순종만이 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한가지 죄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약2:10; 갈3:10을 보라.



실제로 율법의 방법으로(율법을 지킴으로) 친국에 들어갈 사람이 있을까? 그 대답은 노우(No)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롬3:23). 그러므로 단 한 사람도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율법이란 말로서 하나님과 관계하는 한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만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B.은혜의 방법

복음의 본질은 친국에 들어 갈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또 하나의 길, 즉 은혜의 방법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체제이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기본원칙에 의해 움직인다. 구원은 다음과 같은 말로 이루어 진다.



“율법을 지키라, 그러나 형벌을 받을 것이다. 율법을 어기라, 그러나 형벌을 피할 것이다.”

“잠깐만, 여기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지 않은가?” 하고 누군가 이의를 제기 할 것이다. “왜 누구는 계명을 지키고도 형벌을 받고, 누구는 계명을 어기고도 구원을 받는가? 공평하지 못한 처사이다.” 옳은 말이다. 그것은 공평치 못하다. 그렇게 되도록 되어있지 않다. 그것이 공평하다면 그것은 은혜 일리가 없다. 율법은 공정하다. 그러나 은혜는 공평 이상의 것이다.



“좋다. 그러나 한가지 더 있다. 그것은 두 번째 진술, ‘계명을 어기라, 그러나 형벌은 피하게 된다’는 좋다. 그것은 우리의 소망이다. 그러나 첫번째 법칙, ‘계명을 지키라, 그러나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은 어떠한가? 확실히 이것은 너무 거리가 멀다. 어떻게 그것이 은혜일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매우 이상하고 이의를 제기할 만한 것이라고 받아 들여진다.



그러나 기억하자. 은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율법과 정의와 공평의 구조에는 맞지 않다. 이것은 특별히 첫 진술에 대하여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그것을 은혜로 만드는 은혜의 본질이다. 이 조건 없이는 다른 것도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누구에게 이 조건이 적용되는가? 하여간, 누가 그 계명을 완전하게 지켰는가?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계명을 완전히 지켰어도 형벌을 받으셨다. 왜? 은혜로! 오직 은혜의 요구만이 흠 없으신 우리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죄없는 죽음 안에서.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형벌을 완전히 받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한 행위가 실제로 범법자들인 우리에게 형벌을 피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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