젝 카트렐의 예수진리(제11과 칭의에 관한 진리-(2))
2003-09-16
Ⅱ.칭의의 근거



우리의 다음 주제는 칭의의 근거이다. 재판관이 어떤 이에게 “무죄”라고 신언 할 때, 어떤 근거에 의하여 그런 결정에 이르게 되는가? 어떤 사려들이 그와 같은 무죄 방면의 판결을 보장하는가? 그는 정당한 이유없이 그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결정에 대한 한가지 가능한 근거는 그 사람이 실제로 무죄한 것이다. 만약 그가 죄를 짓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면, 재판관은 그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여 그를 정당화 시켜야 한다. 만약 사람이 백 퍼센트 선하고 무죄하다면, 이것이 율법이나 율법의 행위에 의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이다. 그의 칭의의 근거는 그 자신의 의로움이나 선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경우 이 방법을 택하시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행위에 근거하여 의롭게 될 수는 없다. 로마서3:19~20을 보라. 우리의 행위는 우리가 유죄하다는 것만을 보여준다. 우리의 행위는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직접 유죄한 죄인을 “무죄”라고 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경건치 못한 자들을 의롭다” 하실 수 있는가? 롬4:5를 보라.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단 한가지의 근거에 의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이다.(롬5:9)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죄”로 전포하실 수 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죄짓지 아니한 것처럼 취급하신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유죄로 판결 받으셨다. 그리고 우리 때문에 형벌을 받으셨다. 십자가위에서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의 진노의 소멸하는 불 사이에 당신 자신을 놓으셨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 조건들을 만족시키셨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께로 나올 때, 우리는 우리의 빚을 이미 갚으신 이에게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것을 보시고 “아하, 너희가 예수와 함께 있구나 그런 경우라면 너희를 가도록 할 수 있다. 예수가 이미 너희를 위해 대가를 치렀으니까 사건 종결됨”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러므로 이제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는” 이유이다(롬8:1) 이것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방법이다(요일1:7) 우리의 죄는 씻어지고(행22:16), 문서에서도 지워지고. 더 이상 우리를 정죄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그의 피아래-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보시지 않으신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빨간색, 셀로판 종이의 예화를 기억할 것이다. 흰 종이 위에다 검정 잉크로 사람 모습을 그리고 그 위에다가 빨강 잉크로 죄의 여러 가지 종류를 써넣은 다음, 빨간색 셀로판 종이로 그 그림을 덮는다. 그러면 인간의 속 모습에 빨간색으로 써넣은 죄의 목록들은 우리 눈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된다.

우리가 의롭다고 간주되는 근거는 우리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의로움이다. 의로움은 율법의 요구 조건들이 만족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두 가지 방법으로,

율법의 명령들을 순종하든지, 율법이 말하는 형벌을 받든지 함으로 성취 될 수 있다. 예수님은 그 둘 다를 성취하셨다. 그러나 우리를 의롭게 한 방법은 예수님이 받으신 형벌에 의해서 이다. 그분이 “의의 한 행동” (롬5:18), 즉 그분의 구속의 죽음이 우리를 위해 지불 되었으므로 우리가 율법의 형벌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 말씀의 본질이며, 우리의 소망의 근거인 “하나님의 의로우심” 이다.(롬1:17, 3:21~22, 10:3; 고후5:21; 빌3:9) 이것이 우리자신의 더러운 넝마를 가리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어주시는 “의의 옷” 이다.(사61: 10, 64:6) 찬송가의 가사와 같이 “나의 소망은 오직 예수님의 피와 의로우심에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된 것”을 의미한다(롬3:24) 여기서 율법과 은혜 사이의 구별이 매우 분명해 진다. 율법아래서는 인간은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만 의롭게 될 수 있다. 그것은 백 퍼센트 선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은혜 아래서는, 우리를 백 퍼센트 사함 받게 하시는 예수님의 행위에 의해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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