젝 카트렐의 예수진리(제13과 확신에 관한 진리-(4))
2003-09-16
B.믿음으로 말미암아



베드로 전서1:5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고 말한다. 이 단순한 말씀이 확신에 관한 2가지 사실을 나타내 주고있다.

첫째, 그것은 확신이 절대적이거나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확실히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도록 우리자신을 허락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에 달린 것이고, 그것이 바로 조건인 것이다. 우리가 자유로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약속들을 계속 신뢰하는 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은혜 안에 보호하실 것이다. 만약 우리가 신뢰를 그친다면, 우리 자신의 결정으로 우리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잘라 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그 사실은 확신이 조건적인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고 있는 동안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현재의 관계에 대해 확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 나중에 우리가 믿음을 잃어버리거나 은혜에서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남아 있다(갈5:4)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최선을 다해 계속 신뢰하리라고 믿는다.

둘째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었다는 것은 구원의 확신이 행위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이미 살펴 본대로 우리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롬3:28)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확신으로 가는 참된 열쇠이다.

의롭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화평케 된다는 뜻이며(롬5:1), 정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롬8:1)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이 하나님과의 화평과 정죄로부터의 자유가 우리가 얼마나 선한가(행위)에 달린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충분한 그리스도의 피를 계속 신뢰하는가에 달린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 로마서5:1~11에서 바울이 말한 두 가지 전이로 잠깐 되돌아 가보면, 첫번 전이에서의 우리의 역할은 “행위에 의해서”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아” 라는 말로 요약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노여움에서 은혜로의 간격을 건너온 것이다(롬5:2) 이 첫번째의 무시무시한 간격을 우리자신의 행위로 건너온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간격도 우리의 행위로 건널 수 없는 것이다. 그 둘 다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건너게 하셨고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확신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것이지, 성화의 어떤 단계에 도달해야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얼마나 선한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함 받았는가?”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례 받은 그 이후부터는, 그리스도 때문에, 백 퍼센트 용서 받았다는 것을 아는가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과의 현재의 관계에 대한 확신은 “영광의 소망”(롬5:2; 골2:27)을 갖게 해준다. “소망”은 장래에 대한 확신이다. 그것은 좋은 것을 믿고 바라는 기대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소망이란 단어는 때때로 단지 바람일 뿐이지만 성경에서는 그렇지 않다.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은 그것이 불확실 하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것을 말하기 때문에 소망이라고 하는 것이다. 로마서8:24~25을 보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피를 인해 현재 의롭게 된 우리는 이 소망, 곧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확실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
없음
젝 카트렐의 예수진리(제13과 확신에 관한 진리-(3))